동남아 정책의 발상이었고 미국 지배의 지역협력 기구였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필리핀과 태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관심은 끌지 못했다. 이후 1961년 동남아연합(ASA :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3개국에 의해 방콕에서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관심보다는 경제
창설 30주년을 맡는 1997년부터는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를 실시하여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주도적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
구성
동남아시아국가연합정상회담(매 3년마다 공식 개최),외무장관회의,경제장관회의,경제장관회의,상임위원회가 있으며 사무국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소재하고 있다.
기구들은 다음과 같다.
(1) 동남아시아의 지역협력기구
설립연도 : 1967년
목적 :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기반 확립
주요활동 : 정상회담, 각료회의
가입국가 : 10개국(2002년 8월 현재)
본부소재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세안(ASEAN)으로 약칭된다. 1961년 창설된 동남아시아연합(ASA)의 발전
(AFTA)를 결성. 국제적 교섭력 강화
(2) ASEAN의 경제협력
1)경제협력
-창설 초기 역내 경제협력의 필요성 인식 있었으나 실질적인 협력 미진.
-1976년 제1차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동남아우호협력조약과 아세안 협력선언을 채택.
(지역안보와 평화유지는 경제발전이 기초되어야 하므로)
국가의 사활적인 부분에서의 외교정책의 변화는 다른 어떤 정책들보다도 국제사회의 힘의 분배 양상이나 국가들 간의 동맹관계, 연합을 중시하게 된다. 따라서 다음에 언급될 본 연구의 내용은 9.11테러라는 중요한 역사적 국면이 중국의 외교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영향력은 어떤 결과로
동남아 비핵지대화 조약 (Treaty on South East Asia Nuclear Weapon-Free Zone, SEANWFZ)
- 1995년 12월, 태국, 방콕, 제5차 아세안 정상회의 시 채택
‘동남아 평화, 자유 및 중립지대 선언’(ZOPFAN) 실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동남아 10개국정상들이 조약에 서명하였고, 1997년 3월 발효되었다.
6. ASEAN Vision 2020
위해 선진구들과 대화채널을 열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 1987년 제 3차 ASEAN 정상회담 : ASEAN의 미래방향설정을 재검토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이로써 ASEAN 지역 내 투자보장을 상호조정하고 비관세장벽, 산업공동출자의 확대 등 동남아 지역의 국가 간 무역증진을 위한 거시적 문제를 거론하였다.
경제발전 노하우를 필요로 하고, 한국은 새로운 시장 개척, 특히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베트남을 필요로 한다.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도 동남아의 중심인 베트남과 동북아의 중심인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안보상의 상호협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한국과
경제적 자원을 군비로 전용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의 확립 및 유지를 위하여, 군비규제 체제의 확립에 관한 유엔회원국에 제출될 계획을 군사참모위원회의 원조를 받아 작성한다. 절차상의 문제는 9개국의 동의로 의결되나 실제문제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의 동의가 있어야
동남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서구와 일본 주도의 동남아 협력체에서 탈피하여 동남아 자체가 주동이 되는 자주적 협력체를 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소망의 결실로 탄생된 것이 현재의 ASEAN이다.
2) ASEAN 설립 직전 가맹국의 상황
① ASEAN 역내국의 갈등
ASEAN이 설립되기 전 동남아에는 국가 간의 불화가 전